쇳뿔바위봉 시산제를 다녀와서

“산신령이시여! 무탈한 산행과 복을 주시고 회원 상호간에 친목과 우의를 돈독께 해주옵소서!“
정철수 고문의 축문이 쇳뿔바위암에서 메아리가 되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계사년 새해의 첫 산행은 보안 쇳뿔바위봉에서 시작되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우리 한산전북의 불사조들은 무탈한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가 열리는 정상을 향해 힘차게 설원을 가르며 올라간다.

나의 안내를 맡은 친구 최병선이 아이젠 착용을 권해왔다.
“송관장, 많이 미끄럽다. 아이젠 착용하자.”
“그래, 안전이 최고니까.”
나의 안전산행을 위해주는 친구의 모습에 감명을 받으며 나는 눈밭에 앉아 아이젠을 착용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 이중기가 나를 거들어주었다.
“경태야, 아이젠이 삐뚤어졌어. 어디보자.”
이중기는 나의 아이젠을 바로 잡아주었다.

우리는 서재호 국장의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을 한 후,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단체사진을 한 컷 찍고는 얼음눈으로 뒤덮힌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올라갔다.

“경태야, 오른쪽 절벽이다.”
“심해?”
“약간 경사졌어. 떨어지면 다쳐.”

정월의 기온치고 제법 포근했다. 10여 일 동안 극성을 부렸던 맹추위가 한풀 꺾인듯했다. 아마 한산전북의 불사조들이 산행을 한다고 하니 산신령께서 우리의 앞길을 살펴 주신 것 같다. 작년에 순창 강천산에서 지극정성 제사를 드린 덕일게다, 라고 나는 마음으로 읊조렸다.

‘신령이시여! 제사지내려 가는 길에 우리의 발길이 순조롭도록 도와주시옵소서.’라고 나는 다시 한번 마음으로 기도했다. 나의 간절함이 큰 탓일까. 산행 내내 바람도 잠잠했고 간간이 따스한 햇살이 방긋 고개를 내밀어 주기도 했다.

“경태야, 50센티 바위 쑥, 올라와.”
“야, 정신없다. 계속 바위야?”
“으응.”
해변을 끼고 있어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또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깨닫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태야, 좌우로 절벽이다.”
“아이고, 산신령님이 올해도 빡세게 훈련시키시네. 하하하.”
나는 갑자기 휘몰아치는 찬 기운에 볼기짝이 찢기는 통증을 느꼈다. 나는 머리에 쓴 두건을 급히 아래로 내렸다.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두건이 내려졌다. 잠시 후 찾아온 따스한 온기에 취해 다시 행복한 산행은 계속 되었다.

“경태야,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아니 벌써 정상이야?”
“아니, 아직 멀었어.”
점자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경태야, 오른쪽으로 바다가 멋있게 펼쳐져 있다.”
“아, 은은하고 빠알갛게 물든 일몰...”
나는 순간 고교시절 넋 놓고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변산낙조의 빛바랜 추억의 서랍장이 열려 술에 취한 듯 중얼거렸다.

“병선아, 멋있지?”
“황홀해...”

저 바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겠지. 항상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켜온 저 바다. 난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해왔나? 때로는 힘들다 투정부리고 마음 안든다 시기질투하고 때로는 안신을 위해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가. 아! 바다여! 너는 진정 내 친구다. 힘들 때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고 아플 때 귓가로 다가와 안온함을 속삭여 주었지.

“경태야, 뭘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으응. 아냐, 아무것도.”
나는 본능적으로 마른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 헛기침을 몇 차례 했다.

“경태야, 오른쪽 무릎 조심해. 날카로운 바위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 고개 푹 숙여. 나무가 낮게 가로질러 있어.”
“오케이.”
돌출된 낮은 바위와 가로지른 나무에 무릎과 머리를 수없이 부딪쳐 아파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회원들은 안내할 때마다 노이로제라도 걸린 듯 조심스럽게 참 안내도 잘해준다.

“야, 국제인증 안내인이다. 하하하.”
나는 격려와 함께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다시 가파른 바위구간을 힘겹게 올라갔다.

“햐! 장관이다.”
“뭐가?”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뒤따라오던 최낙관 교수가 탄성을 자아냈다.

양진영 원장도 박경기 회계사도 연거푸 폐부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탄식을 뽑아냈다.
“진영아! 경기야! 풍광이 멋지지. 하하하.”

나는 마치 눈 앞의 풍경이 보이기라도 하듯 아는 체를 했다.
“네가 나보다 더 잘 보네. 허허허.”
우리는 이렇게 힘들 때마다 유머를 쑥쑥 내뱉으며 잠시의 피로를 잊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농담이 자연스럽게 받아진 것이다. 아마 서로의 교감이 교차했기 때문 아닐까?

“아! 태양이 시꺼먼스다.”
“뭐, 불랙 선도 있나? 하하하”
“병선아, 물 좀 마시고 가자.”
나는 배낭 포켓주머니에서 아내표 생수병을 꺼내 감로수처럼 달콤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참 꿀맛이었다.

“경태야, 60도 가파른 바위다, 잘 내려와.”
“아니 벌써 내려가?”
“아니, 다시 올라가야해.”
완만한 암석능선을 따라 가늘 길에 간간이 살결을 간지럽히는 미풍에 취해 사색하고 있는데 갑자기 긴장모드가 조성되어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경험이 축적되어 있건만 매번 산행할 때마다 겪는 긴장은 순식간이다. 넋 놓고 가다가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암석구간을 산행할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경태야, 앉아, 바로 앞은 가파른 절벽이다.”
“아니 여기가 시산제터야?”
“응”

나는 앉아서 바닥을 만져보았다. 마치 화산바위처럼 울퉁불퉁했다. 건조한 바위인줄 알았는데 엉덩이가 금세 축축해졌다. 바위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물기들이 바지를 타고 속옷까지 적신 것이다.

나는 일어서서 시산제에 대비했다.
“형님, 고사돼지 있어요?”
“그래, 콧구멍이 참 크다”
“그럼 복채 많이 들어가겠네요. 하하하.”

지난주 제주도 여행할 때 고사돼지는 예쁜 걸로 주문했다며 산악회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귀뜸을 해주신 신흥중 이대홍 선생님과 농담을 했다.

“경태야, 빵이다.”
양진영 이비인후과원장은 도시락대용으로 빵을 가져와 나에게 몇 개 건네주었다.
“와, 꿀맛인데. 밤빵, 팥빵 맛 죽여준다.”
출출한 탓인지 나는 빵을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다.

“자, 축문을 올리겠습니다.”
정철수 고문님의 쩌렁쩌렁한 축문낭독과 주인재 대장님의 산악인선서에 이어 소지식을 마친 후 내가 회원을 대표하여 삼배를 올렸다.

‘나라의 안녕과 산악인인들 안전산행과 무탈, 그리고 암투병중이신 아버님 쾌유와 봄에 출산예정인 며느리 순산과 가을에 막내아들 결혼식 잘 치르게 해 주소서, 또한 도서관과 장애인신문사도 잘 운영되게 해주소서...’
나는 한배 한배 올릴 때마다 정성껏 주문을 외웠다.

시산제를 마친 후 우리는 제사음식을 음복했다.
“야, 막걸리 맛 죽여준다. 고사돼지 머리맛도 꿀맛이다.”
그리고 우리는 경사진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었다.

“야, 언제 음식을 했나?”
“응 아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준 거야.”
“맛있다.”
“올해도 산행 열심히 하여 건강 챙기라는 뜻이겠지. 맛있게 먹자. 하하하.”

나는 새벽부터 정성들여 장만해준 소고기찌개볶음과 버섯볶음밥을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산에서 먹는 밥맛은 천하진미다. 고량진미는 아니라도, 진수성찬은 못되더라도 꿀맛식사다.

오늘도 윗니 아랫니가 부딪칠 정도의 추위였지만 최연소 교장이 될 이강영 장학사가 건네준 따끈한 누룽지차, 장향화 이사님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여준 따끈한 커피 맛, 그리고 최병선 원장이 보온병에 담아온 따끈한 아메리카노 커피 맛들은 남극의 맹혹한 추위도 녹일 정도의 정이 듬뿍 담긴 것이었다.

황제도 부럽지 않을 오찬을 마친 후 우리는 전주에서 개최될 정기총회시간에 맞추기 위해 하산 길을 재촉했다.

“경태야, 하산코스는 가파른 바위다. 눈도 많다. 미끄러지면 낭떠러지다. 조심해.”
“야, 이건 완전 암벽산행인걸. 신령님 올해에 이보다 더 험한 산행은 없겠죠? 하하하.”

우리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설원을 굵은 로프를 붙잡고 조심조심 내려왔다.
“야, 이 코스로 올라갔으면 초죽음 됐겠다.”
길은 60도 이상의 급경사 바위 구간이 계속 이어졌다.

“경태야, 오른쪽에 로프 있다. 잡고 뒤로 돌아서 조심히 내려와.”
나는 로프로 붙잡고 조심조심 바위를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우리는 등산로가 폐쇄된 구간을 발견했다.
“통제구간인데 이리 가도 될까요?”
“괜히 통제시켰을까?”
우리는 잠시 등산로가 폐쇄된 구간에서 서서 고민했다.

“폐쇄구간으로 하산해요.”
등산 베테랑인 김춘곤 자문위원님이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그의 지시에 순응하며 폐쇄된 등산로를 뚫고 급경사 코스를 내려왔다.

“야, 계곡 같아. 너무 울퉁불퉁한데?”
우리는 가파른 암석구간을 무사히 통과했다.
“경태야, 아이젠 벗자. 드디어 마을길이다.”
“그럼 다 왔네.”
우리는 4시간 30 분 만에 모든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경태야, 쇳뿔바위봉을 배경으로 사진 찍자. 서 있어봐.”
“그래.”
“정상에서는 잘 몰랐는데 여기서 보니 바위가 소뿔처럼 생겼어.”
“그럼 쇳뿔이 아니라 소뿔바위라 해야 맞지 않나?”
나는 용어해석이 궁금했지만 자료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관장님, 손영조에요. 사진 같이 찍죠.”
“그래, 손대장.”
나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손영조 대장과도 쇳뿔바위봉을 배경으로 추억을 만들었다.

올해도 시산제 올리기에 아주 좋은 날씨를 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특히 살신성인의 자세로 사랑의 안내산행을 해준 최병선 친구와 산악회 모든 회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국산악회전북지부여, 영원하라! 회원님들이여 사랑합니다. 계사년에도 만사형통, 운수대통하소서....

/달리는 희망제조기, 사회복지학 박사 송경태

폭풍은 참나무의 뿌리를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한다

장애인 세계최초 세계 4대 극한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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