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는 눈 구경하기가 왜 이리 어렵습니까? 지방 어느 지역엔 그래도 한때나마 많은 눈이 내렸다던데, 우리 고장은 어쩌자고 눈 인심이 이리도 인색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 달린 사람들마다 이러쿵저러쿵 내뱉는 말도 천차만별입니다.
“이렇게 해서 농사나 잘 될까 몰라”, “올 겨울은 눈이 안 내려서 좋구먼. 길도 안 막히고 도로가 지저분하지도 않아서 정말 좋아”,

“무슨 겨울이 이렇담. 겨울은 눈이 내려야 맛인데 이렇게 눈 한송이 내리지 않는 겨울은 정말 싫다 싫어”, “겨울 장사 다 망했네. 무슨 겨울날씨가 전혀 춥지도 않고 봄 날씨 같담.

이러다가 곧바로 봄이 오는 거 아냐?” 등등.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니 문득 내 어린 시절 겨울의 눈 많고 유난히 추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30여 년 전, 그때는 웬 눈이 그리도 많이 내렸던지, 그리고 춥기는 또 왜 그리도 추웠던지요. 아마 먹는 것에서부터 입는 것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있어 궁한 시절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겠지요.

그때의 겨울은 참으로 겨울다웠지요. 매서운 추위를 그때는 톡톡히 맛보았습니다.

털신을 발에 걸친 녀석이 그렇게나 부러웠던 때였죠. 검정 고무신은 냉혹한 한기로부터 발을 보호해 주질 못했거든요.

게다가 미끄럽기는 또 어떻고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츠리고 두문불출 방 안에 틀어박혀서만 지냈느냐 하면 결단코 그렇지는 않았지요.

대나무 쪼가리를 발밑에 깔고 스케이트를 탄다거나, 널빤지에 대쪽을 대고 못을 박아서는 썰매를 탄다거나 해가면서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야말로 신명나게 놀았습니다. 해가 잘 들지 않아 눈이 쉬이 녹지 않는 골목이나 깽본은 아이들한테는 훌륭한 썰매장, 스케이트장이었죠.

삼삼오오 편을 갈라서 눈을 뭉쳐 던지는 눈싸움은 또 얼마나 박진감 넘치는 놀이였던지, 동네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면서 눈을 뭉치고 던지고 하다가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곤 했었죠.

밤사이 눈이 내려 쌓이면 창호지를 바른 방문을 통해 환하게 그것을 느끼곤 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후다닥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서면 눈앞에 펼쳐진 정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장독 위며 담장 위, 그리고 집집마다 초가지붕 위로 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탄성이 튀어 나왔습니다. 은세계 바로 그것이었죠.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하얀 길 위로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곤 하던 조금은 순진한 면도 있었습니다. 빗자루가 매몰차게 쓸어 치우기 전에 성큼성큼 하얀 눈길 위에다 발자국을 찍어 놓고는 뒤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연탄이 전 국민 연료의 대표로서 목에 힘을 주던 때였는데, 다 타고 버려진 연탄재는 빙판 위에서 훌륭한 효자노릇을 감당하곤 했죠. 그 한 몸 빙판 위에다 초개와 같이 부서뜨려서 행인의 걸음을 지켜주었으니 효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추위는 설 무렵이 되면 더욱 극성을 부려댔고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겨울을 나랴, 설 준비를 하랴 전전긍긍 마음고생이 적잖았습니다.

설 전날엔 밤이 늦도록 떡 방앗간의 백열등 전구는 꺼질 줄을 몰랐고, 고추바람 맹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괜스레 신이 나서 동네 골목골목을 무리 지어 누비고 다녔지요.

지금과 같이 장난감도, 놀 거리도 그리 탐탁지 않던 때였는데 뭐가 좋아서 그렇게나 신이 났던지 모르겠습니다.

설이나 추석처럼 명절 때가 되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당시엔 너나할 것 없이 형편들이 어려운 때였던지라 쌀밥 먹는 집이 드물었습니다.

쌀 한 톨 들어가지 않은 깡보리밥이나마 배부르게 먹을 수만 있었어도 부자가 부럽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의 살이라고 일컫는 고기인들 어디 쉽사리 입에 넣어 볼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주야장천 푸성귀 일색이었죠. 그렇게 채소로 길들어진 뱃속에 명절이라고 해서 기름에 튀긴 것이며 고깃국을 덜컥 집어넣고 나면 백발백중 탈이 나곤 했습니다.

목구멍 너머로는 신트림이 올라왔고 뱃속에서는 용암 끓는 소리가 몇 날 며칠 지속되곤 했답니다. 물론 변소 걸음 또한 그 횟수 만큼이었고요.

그러니 눈앞에 진수성찬인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가장 속상했던 것은 야속하게도 배탈이 일주일가량 지속되고서야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즈음이면 이미 명절 음식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을 때이니 어린 마음에 오죽이나 섭섭했겠습니까?

무척이나 속이 상했었습니다. 한 토막 싸한 아픔을 가져다주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라고나 할까요.
글쎄요. 요즘은 매일 매일이 명절 같고 365일 때때옷들을 입고 사는 시대니 어디 상상이나 될 일이겠습니까?

어느 집 쓰레기통에서 군데군데 뜯어먹고 버린 피자를 보았다는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말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큰 시대적 격차를 보여 주는 것만 같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판촉을 목적으로 해서 과자 봉지 속에다 유명 연예인의 사진 같은 것을 넣어서 파는 제과업체들이 있다는데, 글쎄 이걸 산 아이들이 봉지를 뜯어서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만을 꺼내고 과자는 고스란히 버린다지 뭡니까. 요즘 아이들의 취향과 행태를 우리 아이들로부터 속속 전해 들으며 내심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더라고요.

조금만 관심을 갖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면 풍요 속에도 눈에 띄지 않는 음지들이 적잖게 많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요, 아이를 둔 각 가정에서 내 아이만 올바르게 계도한다면 전국에 있는 우리네 아이들 모두가 몸도 마음도 건실하게 되겠죠?


/달리는 희망제조기, 사회복지학 박사 송경태

폭풍은 참나무의 뿌리를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한다

장애인 세계최초 세계 4대 극한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국가유공자, 시인, 수필가, 대한민국 신지식인, 우석대 겸임교수

저서 : 신의 숨결 사하라 2011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시집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2008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수필집 나는 희망을 꿈꾸지 않는다 2009
희망은 빛보다 눈부시다 2009, 희망제작소

그랜드캐년 울트라 271Km, Kbs-1tv 인간극장 5 부작 ‘그랜드캐년의 두 남자’ 방영, (2012 년 10월 22일-26일)

남극마라톤, Mbc-tv 신년특집 다큐, ‘빛을 향해 달리다’ 방영 2009 년 1월 10일)

사하라사막, Kbs-1tv 토요스페셜 ‘암흑속의 레이스 250Km ’ 방영 2005년 11월 5일)

아타카마사막, Sbs-tv 휴먼다큐, ‘아들의 눈으로 사막을 달리다’ 방영 2008년 5월 10일)

송경태 원작, ‘오! 아타카마’연재만화 주소 : blog.naver.com/janghanbu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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