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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의 사진이 준 울림…"계엄령 광주를 가야겠다"
투데이안  |  bhaum27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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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8  11: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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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당시 UPI통신사 사진기자 80년 5월 취재
'시민에 곤봉' 사진을 입수한 뒤 광주로 취재나서
"군인들, 같은 민족인 광주시민에게 무차별 총격"
"군인, 죽은 아이 발 잡고 털렁털렁 계단 내려와"
'탱크 탄 시민군' 사진은 미국 타임지 표지 실려

   
 

"기자님, 오늘 저녁에 군인들이 들어온답니다. 우리가 살지 죽을지 모르겠지만, 기록이나 좀 해주소."

외신기자 정태원(80·로이터통신 전 사진부장)씨는 그날 전라도 광주에 있었다. 계엄군과 시민군 간 긴장이 극에 달했던 1980년 5월26일,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광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날이다. 그날 밤, 누군가 정씨의 방문을 두드렸다.

"밖에선 '철컹철컹'하는 쇠소리가 나는거야. 누구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고. 아, 계엄군이 설마 여기까지 왔나. 문을 열어보니까 학생 세 명이 개머리판 없는 총을 매고 왔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저러는 거야. 그래, 가자."

당시 전남도청이 보이던 전남일보(현재 광주일보) 2층에 자리를 잡은 정씨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 2시께부터 들리기 시작한 총소리는 포 소리로 이어졌다. "들으면 알아, '탕탕탕탕탕' 연발은 계엄군이야. 소리가 점점 심해지는 거야."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계엄군의 전남도청 무력진압 사건이다. 

"광주에 가봐야겠다" 생각하게 된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군인이 시민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는 사진이 당시 정씨가 몸담고 있던 UPI통신으로 넘어왔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는 보도되지 못했다. 언론통제 때문이었다. 

   
 

"이게 누구 사진인지, 사실관계가 확실한지 통과가 돼야 미국의 본사로 사진을 보낼 수 있는데 처음엔 못 보냈어. 누가 찍었는지 처음엔 확인이 안됐거든. 근데 광주의 사실을 알려야 했고, 사진을 누가 촬영했는지 나중에 알게 돼서야 보냈지." 

정태원씨는 고인이 된 당시 전남일보 신복진 기자가 이 사진을 촬영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설명도 있다. 실제 이 사진을 찰영했던 것은 전남매일의 사진기자 나경택씨라는 것이다. 당시엔 본인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서 촬영자가 잘못알려졌다는 게 나씨의 주장이다. 실제 나씨는 나중에 광주항쟁이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위상을 되찾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달고 이 사진 등을 포함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어쨋건 이 한 장의 사진은 5·18의 실태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정씨가 광주에 도착한 20일께 광주는 이미 계엄군에 봉쇄된 뒤였다. 손주가 집을 나선 지 사흘이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통곡하던 할아버지, 계엄군에게 얻어맞아 팔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던 할머니들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최후 항쟁으로 기록된 27일까지 외신기자 1호로 광주의 현장을 누볐다.

"버스 유리창을 깨고 그 안에다가 최루탄을 집어 넣었어. 무차별이야. 27일 아침에 전남도청에서 죽은 아이들을 여럿 봤어. 군인 두 명이 죽은 아이의 발을 하나씩 잡고 내려오는데 계단 층마다 머리가 털렁털렁 했지." 

시민군의 시체는 도청 앞에 푸대자루처럼 늘어졌다. 계엄군은 그들을 쓰레기차에 실었다. 숨이 붙어 있는 사람까지 쓰레기차에 실어 올리려는 모습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걔는 병원으로 갔다던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지."

그리고 계엄군은 한 자리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우리 앞에 대적할 이 누구인가.'

"이건 한민족으로서 그럴 수가 없는 일이야. 그냥 앞에 있으면 무조건 (총을) 갈겨. 그게 바로 광주사건이야." 

【서울=뉴시스】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 끌려가고 있는 소년 시민군의 모습. 사진기자 정태원씨는 "당시 고작 14살, 16살 정도의 어린 애들도 시민군에 동참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사진은 저작권자 요청으로 회원사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9.05.18 (제공=정태원씨)

머리에 총알이 스치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27일 아침의 일이다. 차츰 해가 뜨면서 창문 너머로 사진을 찍던 정씨가 컬러 사진용 카메라로 장비를 교체하려고 머리를 숙인 그 순간 총알이 날아와 벽에 박혔다. 머리에선 뜨끈한 피가 흘렀다.

"광주에 특수부대만 보낸 게 아니라 저격수까지 보냈다고 생각하는 이유야. 카메라에 담아둔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복도로 기어나갔는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최광태(당시 ABC 기자)가 담배를 권하면서 연기가 머리로 나오면 뚫린거고, 안 나오면 안 뚫린거니까 괜찮다고 하더라고." 

   
 

광주에서 찍은 사진은 택시를 타고 매일 서울을 오가며 외국으로 보냈다. 택시 자동차 보험, 택시기사 생명보험에 수당으로 하루 16만원을 약속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조명된 독일 기자 위르겐 힌트페터와 광주에서 동행한 것도 정씨다.

"위험하니까 기자들끼리 몰려 다녔는데 웬 못보던 친구가 온거야.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동경에서 왔대. 그래서 한 이틀 간 같이 다녔지. 한국말을 못하니까 날 졸졸 따라 다니더라고." 

그렇게 찍어 남긴 사진은 고스란히 광주의 기록으로 남았다. 타임지에서는 탱크를 탄 시민군의 모습을 담은 정씨의 사진을 '스트라이프 인 사우스 코리아(Strife in South Korea·한국에서의 항쟁)'이라는 제목과 함께 표지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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