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명성교회는 권형준목사가 부임한 이후 사도행전적 
교회를 지향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다.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되는 신앙공동체 향해 날개 짓’
-프랑스 파리 한인연합교회 사역마치고 명성교회에 ‘둥지’

"나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한국교회가 종교적 형식과 제도에 취해 기복주의와 인본주의 그리고 세속화로 치달으며 허우적 되고 있다.

대형교회의 세습화와 종교인과세 논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지경이다.

내가 만든 하나님에 빠져 ‘광란의 군무’를 추고 있다.

세상보다 낮아져야 할 교회가 맘몬과 권력에 취해 자정 능력 상실이라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10여년을 선교사로 섬긴후 프랑스 파리연합교회에서 담임목사로 8년을 사역했던 명성교회 권형준목사.

이국땅에서 "도탄에 빠진 조국 한국교회를 놔두고 지금 이국땅에서 뭐하고있냐?"는 지인의 일갈에 그는 미련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혼돈과 상실의 시대에 정읍 명성교회 사무실에서 '세례요한'을 빼닮은 권 목사를 만났다.

그는 오늘도 '오직복음 오직예수 오직성령 오직말씀'을 외치며 광야를 누비고 있다.

◆더 이상 세상이 교회를 믿지 못하는 못하는 시대가 됐다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로 가기 위한 첫 번째 변화는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이 부분은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처럼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을 목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게 될 때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순도 높은 신앙을 본받게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교회의 본질을 새롭게 세우기 위한 교계지도자들의 자세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말씀에 뿌리를 둔 신앙인들을 만들어야야겠지요. 그릇된 길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말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전에 사제들만 가지고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평신도에 읽을 수 있게 한 것이었다면 오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른 말씀을 들려주고 해석해 줘서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의식있는 성도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물론 지도자들 자신이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본을 보여 가면서 말이지요."

◆북한선교를 위한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도 활발하게 북한을 왕래하면서 선교의 비전을 실천하는 분도 계시고 북한에 거주하면서 NGO단체들을 운영하는 한국인들도 270여명이 계십니다. 저는 북한 선교를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가오는 통일 시대를 준비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숭실대학교에 기독교통일지도자 훈련센터가 있습니다. 영락교회가 앞장서서 한국 개신교 초교파로 세운 통일을 위한 인재 양성센타입니다. 2년전에 박사과정에 입학해 융합학문으로 ▲통일법학 ▲통일경제학 ▲통일행정학 ▲통일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또 제가 월요일 강의를 하고 있는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 학생들에게도 북한 선교의 비전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선 아직 알아보는 단계이나 남한에 들어와 살고 있는 3만2천여명의 탈북민들과 소통하며 그분들을 섬기는 일에 앞장서려고 합니다."

◆기복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한 목사님의 견해는?

"기복주의는 인본주의의 한 양상이라 하겠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지음 받은 인간이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곧 기복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많이 늘고 있다고 하지요?

"미래학자 최윤석의 예견으로 이대로 가다간 한국 기독교가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근대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엔 사회적인 영향력도 많이 잃어 버린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필요합니다. 스스로 자정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나아갈 목표를 새롭게 교정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나를 배제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외치는 슬로건으로 되지 않습니다. 묵묵히 나부터 우리 교회부터 복음의 정신으로 기록된 말씀으로 돌아가는 회복의 운동이 제2의 교회개혁운동이 될 것입니다."

명성교회 권형준목사는 교회 지도자들이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곳은 사랑이 넘치고 평화와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23절에 있는 말씀대로 육체의 소욕이 사라지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하나님 나라를 주님께서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목사님의 어린시절을 기억한다면?

"모태신앙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교육을 받았고 비교적(?)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사춘기를 심하게 앓기도 했지만 교회에 있기를 좋아했고, 교회의 울타리는 떠난 일이 없었습니다. 좋은 신앙의 친구들도 있었구요."

◆성직자의 길을 가기 위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어머니 등에 업혀 천막 부흥회 같은 곳도 많이 갔었습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면 당시엔 부흥강사 분들이 저희 집에서 주무셨던 기억이 납니다. 도시였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목사님들이 주무실만한 숙박시설이 흔하지 않았던지 교회에 선임장로였던 아버지가 강사 접대를 집에서 주로 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교계에서 유명한 부흥사 신현균목사님과 피종진 목사님 같은 분들이 주무시고 가실 때 제게 안수기도도 해주시며 장래희망도 물어보시곤 했지요. 그 때 ‘목사요’라고 대답하면 가지고 계신 과자도 주시고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대답하고 칭찬 듣는 것을 재미삼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인격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바로 목회자의 소명을 받게 됐습니다. 청소년기에 한 때 방황을 한 적도 있지만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읽은 소설 ‘천국의 열쇠’에 나오는 주인공 프란치스 치셤 신부의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감동을 느끼며 제가 바라는 성직자 상이 됐습니다."

◆부모님의 가정 교육이 목회자의 길을 가는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육사출신의 직업군인으로 한국전쟁, 월남전쟁에 참전하셨고 퇴역 후엔 교직에 몸담으셨던 선친 밑에서 매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근면, 성실, 정직’이 가훈이 었는데 이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노력하셨던 에피소드도 많이 있습니다. 50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도 돌아가신 아버님을 마음으로 참 존경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데 가슴에 새기고 사시는 성경말씀은?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받았느니라” 와 디모데전서 6장 11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 이란 표현을 좋아합니다.아프리카 선교사 시절에도 현지인들이 이렇게 불러주면 마음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성경 속 디도와 연관이 있는 그레데 교회처럼 종교는 있는데 신앙은 없는 크리스찬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목사님의 견해는?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one of them)가 아니라 생명력 있는 신앙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크리스천이 많이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말씀으로 양육돼갈 때 참된 신앙의 정수를 맛보는 성도들이 늘어나는 것도 보게 됩니다. 짝퉁 종교가 아닌 생명력 있는 신앙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접하면 분명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세상속의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빛과 소금이 세상 가운데 교회의 정체성이지요."

◆명성교회에 부임하시게 된 계기는?

"프랑스 파리연합교회를 8년간 담임하며 선교&교육관도 구입하고 목사관도 파리 남쪽에 마련하고 안정적으로 목회하다가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들어 기도하던 중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명성교회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한 교단 교회였고 정읍은 한 번도 지나가 보지도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부임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밖엔 말할 수 없네요. 이력서를 내고 지원한 것도 아니고 시무 장로님들이 누구로부터 추천을 들으시고 당시 교단 선교정책연구원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던 제 사무실에 찾아오셔서 교회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가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로부터 약 한 달간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에 청빙에 응하게 됐습니다. 들어보면 요즘 한국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문자 그대로인 ‘청빙’이었습니다. 아무튼 장로님들을 만난 지 한 달 만에 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이지요."

◆명성교회의 자랑을 3가지만 해주신다면?

"저희교회는 55년의 역사 속에 잔잔하게 꾸준히 성장해온 교회 순수하고 사심이 없는 교인들이 많은 교회 열방을 품고 지역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사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가지만 자랑해주십시오.

"자랑이라기보다는 성향을 말씀드린다면 특별한 재주나 자랑할 것이 없지만, 살림과 요리는 빠지지 않고 활동적이기 보다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섬김에 충실하고 보이지 않게 다른 사람을 뒤에서 섬기는 은사가 있습니다."

◆가족관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를 졸업한 아내(백미영사모)와의 사이에 자녀(1남2녀): 한동대를 졸업한 큰딸 수지와 파리6대학(Universite de Paris 6)을 졸업한 둘째 수현이 그리고 연세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막내 대현이와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는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찬들이 가져야할 바르고 정직한 신앙(종교관)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내 뜻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를 구하며 ‘나는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이란 의식과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삶을 영위하는 존재라는 의식이 바르고 정직한 신앙을 갖는데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권형준목사는 누구인가?

권형준 목사는 선교와 통일을 가슴에 품고 비저너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일찍이 (사)한국 외항선교회에서 훈련과 사역을 경험하고, 1997년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선교사로 10년간 사역했다.

그 후 프랑스 파리연합교회에서 8년간 담임목회를 하는 가운데 유럽 코스타 공동대표로 섬겼고, 한국에 귀국해 교단(기성) 선교정책연구원의 책임을 맡아 정책을 입안하는 일에 실무를 감당했다.

현재는 정읍 명성교회에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숭실대 기독교 통일지도자 훈련센타의 운영이사로 섬기고 있다. 

◆약력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동 신학대학원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목회대학원 졸업 ▷아세아 연합신학대학교 박사원 졸업 ▷1997년 4월 성결교단에서 목사안수  ▷(사) 한국외항선교회 사무국장 역임 ▷교단 파송 카메룬 선교사 10년 사역 ▷프랑스 파리연합교회  담임목사 8년 사역 ▷유럽코스타 공동대표 (프랑스 대표) 역임 ▷교단 선교정책연구원 부원장 역임

◆현재 ▷정읍 명성교회 담임목사  ▷유럽코스타(KOSTA)강사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불어권 아프리카 선교회(MAF)대표 ▷숭실대학교 기독교 통일지도자 훈련센타 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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